이인숙

수십년간  미국에서  통일의 운동에 모든 것을 바치신 노길남 선생님께서  Covid – 19으로 결국 4월 25일 저녁 5시 41분(LA 시간)에 운명하셨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라리아 약이 효능을 발휘하기를  간절히 기대했지만 ……

저에게 사망소식을 알려주시며  흐느끼시는 손세영 선생님을 위로했지만  저도  진정하기가 어렵습니다.
너무 허망하고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하기만 합니다.

노선생님께서  3월 20일경에 감기 증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에게    전화를 하셔서  “내가 열이 좀 있는데  체온기가  떨어져서 … “ 라고 하셔서  열이 얼마나 되나요? 라고 내가 묻자  화씨  99도 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보통 독감도  그정도가 되니 물을  많이 많이 드시고 푹쉬세요라고  조언을 드렸지요. 
더욱이 노선생님은 매년 이맘때 되면 한번씩 이렇게  감기를 앓는다고 하기에  저는 처음에 Covid – 19라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전화 하기전에  노선생님은  의사한테 전화를 했더니Covid – 19는 아닌 것 같지만 한번 와 보라고 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다음날  괜찮으신지 걱정이 되어 전화드렸더니  언제나 상쾌하고 명랑한  그 음성으로  “많이 좋아졌어”  라며, 아무것도  한것 없는 나에게  고마워 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다음 날인가 이틀 후인가  다시 전화를 했더니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이상하고 ,두렵게 느껴지는  허스키 목소리에  숨이 차서  말씀 한마디 하는 것조차 힘들어 하셔서  내가 너무 깜짝놀라  Covid – 19로 의심되기에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세요 라고  몇번 강조하면서 급하게 말씀드렸어요. 내가 사는 곳에서  한시간  거리이기는 하지만  내가  당장  응급차를  부르겠다니까  겨우 어렵게 하시는말씀이  “ 내가 할께” 라고 힘들게 말씀 하셨어요. 

그리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데 아무도  병문조차갈 수 없었습니다. 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리고 노선생님이 손선생님께  전화를 했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없었다고 했는데 후에 생각해보니 그것이  인공호흡기 전 단계인  BYPASS 였던 것 같습니다.
인공호흡기는 아니지만 강력한 압력마스크로  산소를 폐로 공급하는  기구입니다.그리고 결국  상태가 안좋아져  인공호흡기를  끼셨습니다.

인공호흡기를 끼기 전에  노선생님은 자꾸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지만  그럴 상황은 아니였지요. 
그후로  노선생님과 한몸 같으신 손세영 선생님과 거의  매일  통화를 하면서  노선생님 건강 상태를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후 트럼프가 말하던  말라리아약으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상태는 더 악화되어 혈압도 떨어지고 신장까지 나빠져  투석을 시작했습니다.
 Covid – 19가 폐 콩팥 심장기능을 다 파괴하고 있었습니다. 

4월 15일  담당의사가  사모님께 전화를 해서 상태가 더 안좋아진다고 알린후 ,  화상으로  노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주어  손세영 선생님, 와이프 그리고 그 딸이 본 볼 수 있었습니다.

70이 훨씬 넘으셨어도  만년 청년같이 활동적이셨는데 ….. 믿기지 않습니다.  제가 버릇없게  언성을 높이기도 했었는데  다 후회가 되고 마음이 아픕니다.
더욱이Covid – 19 로 돌아가셔서  마지막 가시는 길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입관식에  총  10명만이 참석할 수 있으며  그것도 한번에 5명  2시간후에  5명 모두 10명이라 합니다.
하관식에는  누구도 참석할 수 없다네요.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습니까? 
노선생님 , 마지막 가시는 길마저 보지 못하는 마음 메어집니다.
수십년의 세월  조국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  땀흘리며 수고하신 그 씨알이  무성하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이제 그 수고  다 내려 놓으시고 편히 쉬십시요.

통일평론

노길남선생님이 운명하셨다는 충격적인 비보에 접하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족분들 민족통신 관계자 분들에게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너무도 충격이고 슬픔입니다.

2002 년 5 월 민족통신이 제정한 '민족 언론상'제 1 회 시상자로  통일평론이 선정되어 그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로스 앤젤레스를 방문했을 때, 처음 노길남선생님을 뵙게되었습니다. 그 때의 감격은 평생 잊을 수없는,

 통일 평론에게도 그 편집자인 나에게도 영예이며, 지금도 생생한 추억입니다.
이후 노길남선생님이 평양 취재를 마치고 일본에 오실때, 또한 일본에서의 취재시 취재의 도움,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20 회 이상 되지요.

그 때마다 귀중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노길남선생님의 그 정력적인 취재 자세 진지한 인품, 활달하고 유머 넘치는 이야기에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격려 받았을지 모릅니다.
선생님은 진정한 민족언론인, 통일 운동가였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좋은 이야기를 해주시고 방조해주시여 감사합니다.

 삼가 고 노길남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통일평론 대표 최석룡

                  4월26일

                  일본에서

재도이췰란트동포협력회

고 노길남 선생님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저희는 민족통신 발행인 노길남 선생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에 매우 충격을 받았습니다.
더구나 이 위험한 전염병 시기에 생업을 위하여 일하시다가 병으로 별세 하셨다니 더욱 안타갔습니다..

노길남 선생은 오랜 세월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하여 수많은 활동을 하셨고, 해외동포언론인으로 민족통신을 창간하여 진보 통일 운동에 앞장에서 활동 하셨습니다.

분단조국의 한쪽인 북녁의 진실을 바르게 알리는데 커다란 업적을 남겨 주신 통일 애국자 입니다.

저희 재도이췰란트동포협력회는 먼저 가신 노길남 선생의 노고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노길남 선생님, 생전에 그토록 수고하신 조국통일의 과업은 저희들이 계속 할 것입니다.

이루지 못한 세상일 다 내려놓으시고 평화의 나라에서 부디 영면하시기를 삼가 빕니다.

고인의 가족과 민족통신에 애석한 마음과 위로를 삼가 보내 드립니다.

2020년 4월 26일  베를린
재도이췰란트동포협력회 일동 올림

목란꽃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흐릅니다

뉴질랜드에 오셧을때,
박사님의 배낭을 호텔까지 가는 언덕길에 제가 짊어졌었는데
박사님의 배낭이 상당히 무거워서,
제가 박사님 이 무거운 배낭에는 무엇이 들었습니까? 라고 여쭈니
박사님이 웃으며 민족통신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떄 제가 박사님께, 박사님 그러면 이 무거운 민족통신 배낭을 메고, 지금까지 미국중국유럽 세계를 오가신것입니까? 그동안 너무너무 무겁지 않으셧습니까? 하고 여쭈니까,
박사님께서 처음엔 무거웠는데 이젠 이골이 나서 하나도 안무겁다고 하셨습니다.

그떄 문득 제 마음에, 박사님에 비해 한참 어린 저에게도 이렇게 무겁디 무거운 배낭을 박사님은 하나도 안무겁게 느낀다고 하시니,
그동안의 박사님의 사명감과 박사님의 민족통신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것이었던가를 그떄 알고 느꼇었습니다.

뉴질랜드에 오셧을때, 굳이 뉴질랜드까지 오신것은 저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하셧을때,
설마 비루한 저를 만나기 위해서 오셨엇을까 하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취재하시려는 단체들과 안내를 잘해드리기만 하면 제 소임은 다하는것 이라고만 생각했었고,

그래서 뉴질랜드를 떠나시던 날에, 취재 단체의 회원만 보내 배웅드리면 될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떠나시며 남기신 메세지를 보고, 아 제가 생각이 짧은거가 아니였을까하는 후회가 들어, 나중에 다음 목적지에 잘 도착하셨는지를 인터넷통신으로 여쭈니
잘도착하셔서 다행이라고 안심했었지만, 마지막 배웅을 저도 같이 했었어야 하는데 왜 하지 않았었을까 하는 자책과 후회가 들었었습니다.


그 후 나중에 미국에 도착하여 잘 지내신다는 답장을 받고, 제가 제 개인프로젝트로 바빠져 박사님께 안부를 많이 전하지 못하였고,
올해부터 시간이 나서 민족통신에 게시글도 달고 하려 했었는데

이렇게 박사님의 부고소식을 듣게 되다니.

한동안 멍하게 넊이나가더니, 이제는 박사님을 뵜던때가 생각나고 눈에선 눈물이 흐릅니다.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

<민족통신대표 고 노길남 선생님의 영전에 드리는 6.15 미국위원회 조의문>

조국의 자주통일을 위해 민족언론인의 길을 걸어오신 노길남 선생님의 영전에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선생님은 대학 재학 때부터 반 군사독재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언론인의 길을 걷기 위해 유학 차 미국에 온 이후 지금까지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 염원하며 한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그리고 20년 전 민족통신 창간을 통해 민족언론인으로서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의 실현을 위해 분투하여 왔습니다. 그 염원과 분투는 2000년 6.15 공동선언, 2007년 10.4 선언, 2018년 4.27 판문점선언, 6.12 싱가포르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으로 민족 앞에 현실화 되었습니다. 노선생님도 확신하시듯 이 선언들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에 의해 실현 될 것입니다.

인사 나눌 겨를도 없이 유행전염병으로 인해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게 되어 매우 애석하고 실감되지 않지만 선생님이 추구해온 조국의 평화와 번영, 자주통일의 뜻이 우리들에게 살아 있기에 조국 통일의 길 위에서 선생님은 우리와 계속 함께 할 것입니다.

큰 슬픔에 잠겨계실 유족들께 깊은 위로를 드리며 다시 한 번 노길남 선생님의 영전에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2020년 4월 26일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 대표위원장 신필영
(6.15공동선언실천 뉴욕지역위원회 대표위원장 김수복
6.15공동선언실천 워싱턴지역위원회 대표위원장 양현승
6.15공동선언실천 시카고지역위원회 대표위원장 오영칠
6.15공동선언실천 엘에이지역위원회 대표위원장 박영준
6.15공동선언실천 시애틀지역위원회 대표위원장 홍찬)

황선

어떤 상황에서도, 실천하는 청년학생들을 먼저 믿어주고 지지해 주시던 분이셨습니다.
한총련 때 부터 오늘날까지,
미국에 계실 때나 행사가 있어서 한국에 들어오실 때나,
방북취재 중에도 늘 통일운동과 동지들을 염두에 두고 계셨습니다.
종북으로 찍혀서 이 땅에 자유롭게 다니지 못 하시게 된 후로  너무 오랫동안 못 뵀지만, 그래도 선생님을 통일광장에서 못 만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 했습니다.

남편 수배 중에 홀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 어려울 거라며 서울 오실 때면 백달러를 넣은 봉투를 쥐어 주시곤 하셨습니다. 분유값에 더하라고 하셨는데, 민족통신 운영도 쉽지않으셨을텐데, 그렇게 매 번 제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기쁘게만 만날 것을 믿고 있었는데, 코로나라니요.
온갖 난관을 웃으며 잘 건너셨는데 코로나라니,
남이든 북이든 조국에 계셨어야 했는데, 그러면 당연히 피해갈 비극이었을텐데 그 생각하니 더욱 원통하고 안타깝습니다.

선생님, 노길남 선생님.
언제나 한 걸음 앞에서 손짓하는 통일을 안아보자고 쉴 새 없이 일하셨지요. 뛰어오시느라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이제는 그리웠던 분들 만나서 담소도 나누시고, 후대들 내려다 보시며 한 숨 돌리실까요...
생전 그러셨듯, 저희와 후배들을 믿어주세요. 그리고 이제는 편히 쉬세요.
내내 감사했습니다.
곧 통일된 나라로 모시겠습니다.

김명철

로길남선생님의 비보에 접하여
너무 놀래여 말이 안나옵니다.
이런 슬픈일이 어디 있습니까.
선생님께서 단군민족의 후손으로 자기조국과
민족 앞에 그야말로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번영한 통일 조선을 눈 앞에 드고 가시니
가슴이 미여질듯 합니다.
선생님의 높으신 뜻은 우리가 반드시 할것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조마평화센터
김명철

한통련

노길남 선생을 떠나보내면서

청천벽력 같은 부고를 듣고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둘도 없는 자주 민주 통일운동의 동지이신 노길남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니...가슴이 미어집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1980년대에 민주화운동에서 큰 공헌을 하신 노 선생은 90년대에는 애국운동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선구자로서 통일운동을 견인해오셨습니다. 범민련 및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 결성과 강화는 노 선생의 활약 없이는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노 선생이 99년에 창설하신 민족통신은 조국과 해외를 망라한 통일운동의 홍보네트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통일운동에서 ‘북을 바로 알기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신 노 선생은 민족통신 기자로서 자주 북부조국을 방문하여 귀중한 취재기사를 민족통신을 통해서 해내외 동포에게 제공해 주셨습니다.

통일운동의 활동가로서 동시에 민족통신 기자로서 일본에도 자주 오셨던 노 선생은 저희들 재일동포 활동가들의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셨습니다. 지금 선생님의 언제나 밝은 얼굴과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셨던 담화가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오르게 되고 너무나 그립습니다.

“오늘까지 애국사업 이외의 일을 한 적이 없어 가족에게 언제나 경제적으로 고생시켜왔다. 특히 아내의 이해와 협력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국에서 생활하면서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노 선생의 훌륭한 인생은 우리들의 모범이며 목표입니다. 그 숭고한 애국정신은 반드시 계승될 것입니다.

노길남 선생의 가족에게 진심을 담아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이 잠드소서.

2020년 4월 27일

6.15공동선언 일본지역위원회 의장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의장
손형근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고 노길남선생을 추모하며 .

평생을 자주,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길에 혼신을 다 바쳐 온 《민족통신》 대표 노길남선생께서 운명하셨다는 비보를 접하며 고인과 유족들께 심심한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민족언론인의 길을 걸어오신 선생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해외본부 결성에서부터 6.15해외측위원회 결성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부름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헌신해오셨습니다.

이남의 민주화 운동과 조국의 통일을 위해 언제 어느 곳이나 달려가 ‘우리 민족은 하나다’를 힘껏 외쳐왔습니다.

특히, 시대와 민족의 부름 앞에 당당히 투쟁 해오신 선생은 참 언론인의 사명을 일생 제일의 과제로 삼아 앞장에서 실천해오셨습니다. 75회 방북 취재를 통해 북부 조국의 현실, 남과 북은 한 핏줄, 한 겨레임을 알려 나가는 민족언론인으로서 책임을 다해왔습니다.

남북공동선언 이행과 민족 화해협력의 길에 누구보다 큰 일을 하셔야 하는 선생을 잃은 것은 우리 겨레 통일운동의 커다란 손실입니다.

선생이 그토록 바라던 통일 조국을 보지 못하고 조국의 품이 아닌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운명하시다니 너무도 애석합니다.

범민련 남측본부 모든 성원들은 노길남선생의 헌신과 노력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선생의 외침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민족끼리 힘으로 조국을 통일하는 그날 온 겨레는 노길남 선생의 이름을 다시금 깊이 새길 것입니다.

다시 한번 고인과 유족들께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2020년 4월 27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임춘성

노길남 동지의 영전에 드립니다.

 노형!
봄 빛이 현란한 날, 웬 날벼락 입니까?
왜 말이 없습니까? 그 외치던 황야의 소리 어디에 묻었습니까?
왜 눈을 감고 있습니까?  시공을 꿰뚜르는 그 눈 빛은 지금 어디를 응시하고 있습니까?
그 호방한 웃음소리 왜 멈추십니까?
하늘이 너무도 무심합니다.
노형!
은퇴하고 신명나게 조국의 평화와 통일에 함께 힘쓰자 한 것이 몇 달 전인데,
어찌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우리를 남겨두고 훌쩍 떠나십니까?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을 외치던 목소리
구동존이를 말하며 우리 모두 함께 같이 가야 한다고,
그러나 불의에는 분노해야 한다고 의연히 떨처 일어서던 모습
이제는 듣고 볼 수 없어 억장이 무너집니다.
노형!
이국의 땅에서 우리의 얼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잃으면 무시당한다고
민족학교를 열어 밤새워 불 밝히던 것 기억합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민족통신을 창설하여
분단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왜곡으로 점철된 남과북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알려주려고
태평양 수 만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다닌 것 기억합니다.
우리 민족의 번영과 해외 동포들의 위상은
조국의 평화통일과 직결되어 있다며
통일운동에 앞장서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기에, 노형에 빈 자리가 더 없이 크게 다가옵니다.

노형!
세월의 흐름과 함께 우리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역사란 시간의 흐름속에 묻어 있는 사람들의 발자국이랍니다.
 노형의 발자국은 깨여 있는 사람들이 다니는
좁고 험한 오솔길에 있습니다
노형이 품었던 큰 뜻은
새벽녘 문틈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처럼
우리들 마음속에 밝게 남아 있습니다.
노형이 다니던 오솔길에
당신이 남긴 발자국을 찾아 이어가려 합니다.
허나, 가슴이 아려 옵니다!
노길남 선생,
안녕히 잘 가십시요.
 
노길남 동지를 그리워하며
임춘성 드림 
2020년 4월 27일

"노길남선생의 한생은 우리들 모범이며 목표"
박해전 / 사람일보

"이국에서 생활하면서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노 선생의 훌륭한 인생은 우리들의 모범이며 목표입니다. 그 숭고한 애국정신은 반드시 계승될 것입니다."

6.15공동선언실천일본지역위원회(의장 손형근)은 27일 노길남 박사 급서와 관련해 추도문을 내어 "둘도 없는 자주 민주 통일운동의 동지이신 노길남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니...가슴이 미어집니다"라며 이렇게 추모했다.

6.15일본지역위원회는 또 "통일운동의 활동가로서 동시에 민족통신 기자로서 일본에도 자주 오셨던 노 선생은 저희들 재일동포 활동가들의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으셨습니다"며 "지금 선생님의 언제나 밝은 얼굴과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셨던 담화가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오르게 되고 너무나 그립습니다"라고 추도했다.

추도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노길남 선생을 떠나보내면서

청천벽력 같은 부고를 듣고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둘도 없는 자주 민주 통일운동의 동지이신 노길남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니...가슴이 미어집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1980년대에 민주화운동에서 큰 공헌을 하신 노 선생은 90년대에는 애국운동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선구자로서 통일운동을 견인해오셨습니다. 범민련 및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 결성과 강화는 노 선생의 활약 없이는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노 선생이 99년에 창설하신 민족통신은 조국과 해외를 망라한 통일운동의 홍보네트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통일운동에서 ‘북을 바로 알기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신 노 선생은 민족통신 기자로서 자주 북부조국을 방문하여 귀중한 취재기사를 민족통신을 통해서 해내외 동포에게 제공해 주셨습니다.

통일운동의 활동가로서 동시에 민족통신 기자로서 일본에도 자주 오셨던 노 선생은 저희들 재일동포 활동가들의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셨습니다. 지금 선생님의 언제나 밝은 얼굴과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셨던 담화가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오르게 되고 너무나 그립습니다.

“오늘까지 애국사업 이외의 일을 한 적이 없어 가족에게 언제나 경제적으로 고생시켜왔다. 특히 아내의 이해와 협력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국에서 생활하면서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노 선생의 훌륭한 인생은 우리들의 모범이며 목표입니다. 그 숭고한 애국정신은 반드시 계승될 것입니다.

노길남 선생의 가족에게 진심을 담아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이 잠드소서.

2020년 4월 27일

6.15공동선언 일본지역위원회 의장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의장
손형근
Scott Scheffer

I'm shocked and so deeply saddened to have learned that our dear friend Ken Roh was taken away from us by COVID 19. What a terrible loss for the struggle for reunification and peace for Korea, and for the struggle for justice and peace in the entire world. I never met a more dedicated individual. I am still shaking my head in disbelief. My heart goes out to his family, and to all those who worked with Ken to end the imperialist division of beautiful Korea. Long live Ken Roh! Korea is one!

John Parker 

Ken Kilnam Roh Presente! Mr Roh was a tireless advocate for peace and re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He traveled many times to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and through his leadership at the Minjok.com website brought the truth of North Korea and her people and their efforts to defend their sovereignty to people in this country and around the world. Mr Roh died in Los Angeles last night from Covid-19


This photo was 2003, Mr Kilnam Roh saw me off at the airport when I went to DPRK for the 50th anniversary of the signing of the armistice, and to participate at the US War Crimes Tribunal.
Love, solidarity and condolences to Mr Roh's Family and Friends
Ken Kilnam Roh Presente!
Korea is One!

​황선

< 벗이여, 안녕히 다시 만나요. >

벗이여,
나는 행복했습니다.
이역만리 낯선 병상에서 경황없이 이별을 고하게 됐지만
나는
넓고 깊은 민족의 품을 떠난 날이 없었습니다.

신촌거리에서 깃발 하나 올리지 못해도
깃발 찾기를 멈추지 않았던 약관의 나날,
그때는 채 알지 못했던 조국을
태평양을 건너고야 만났을 때,
그때부터 나는 외로움을 몰랐습니다.

누구는 나를 보고 빨갱이라 손가락질했고
누구는 내게 침을 뱉고 욕을 했지만,
비겁한 정치는 내게 아름다운 고향 강원도를 압수하고
분단의 창조자들은 내게서 태평양을 건널 항공권조차 빼앗았지만,
나는 가슴에 뜨거운 별 하나 품고
늘 따뜻했습니다.

조국을 사랑하게 된 후로
나는 진실을 알리는 기자였고,
위대한 민족을 탐구하는 학자였고,
유쾌한 늙은 택시운전사였고,
나는 근면한 통일운동가였고, 낙관의 철학자였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청년이었고 벗들의 동지입니다.

벗이여, 그대가 광주도청에서
총을 쥐고 마지막으로 밤하늘에 어머니 얼굴을 그렸을 때,
벗이여, 그대가 연세대 종합관 옥상에서
최루액을 맞으며 개처럼 끌려갈 때,
벗이여, 그대가 야수 같은 제재에 맞서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을 때,
나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그곳에 있습니다,
겨레의 웃음 속에 겨레의 눈물과 함께.
작별인사는 하지 맙시다.
나는 ‘다시 만납시다’라는 인사만 기억하렵니다.
벗이여,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부디 안녕히 다시 만납시다.

김정옥.정기열

선배님,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시고 이리 허무하게 세상을 뜨시고 말았군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슨 말로 어떻게 가족과 세상 여기저기의 동지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떠나셔서 아마도 가족조차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상황일 것인데…

해서 마지막 떠나시는 길에 가서 함께 하지도 못하게 되었으니 더욱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생전 선배님을 남달리 아끼셨던 현준기, 양은식, 유태영, 손세영 선생님 등 미주지역 여러 어르신들의 심정이 오죽하실까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저려옵니다.

형수님과 따님들 그리고 모든 가족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후배 김정옥.정기열 올림

조영건

통일언론의 혜성 노길남박사의 서거를 애도합니다

안영민

아 이럴수가.. 노길남 대표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억장이 무너집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6.15 남측위원회

조 전

평생을 조국의 자주와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먼저 가신 노길남 선생을 영전에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상심이 크실 유가족과 동지들께도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선생의 삶은 애국, 애족을 향한 끝없는 실천이었습니다.

해외 동포사회에서 겨레의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애쓰셨던 노고와 실천, 무엇보다 <민족통신>을 통해 겨레의 하나 됨을 알려온 선생의 노력은 참으로 값진 것이었습니다.

선생이 생의 마지막까지 염원했던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은 남은 동지들이 반드시 실현해 갈 것입니다.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2020년 4월 28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이창복

조국평화통일협회

로길남선생께서 우리의 곁을 떠나셨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비보에 접하여 커다란 슬픔을 금할수 없으며 유가족분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일본과 평양, 중국 등의 통일운동현장에서 우리 재일동포들을 따뜻하고 허물없이 만나준 로길남선생의 만년청춘마냥 젊으신 모습을 잊을수 없습니다.


2012년에는 저희 통일강연회 출연을 흔쾌히 승락해주시고, 모처럼 일본을 왔는데 더 많은 동포들을 만나고 싶다 하시며 동일본대진재로 피해입은 동포들을 위문하려고 후꾸시마와 미야기를 찾아준 선생님.
우리 해외동포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서 4.27시대에 걸맞게 통일운동을 더 활기차게 벌려나가자고 서로 다짐했던 그날이 언젠데, 어쨰서 이리 조용히 가실수 있단 말입니까.
참으로 억울합니다.
그리고 그간 참말 고마웠습니다.

고 로길남동지이시여, 편히 잠드시라.

조국평화통일협회
회장 리동제

권오헌

통일애국에 한 생을 다하신 노길남 대표님
-삼가 명복을 빕니다-

너무도 뜻밖의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통일된 조국을 위해 헌신을 다해오신 대표님께서 그 영광된 자주통일 세상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시다니! 어찌 쉽게 눈을 감으셨는지 너무
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대표님께서는 외세와 분단시대를 살아오시며 군부독재에 맞서 싸우시는가 하면 해외로 옮기시어 조국 현실을 더욱 객관적으로 보시면서 마침내
민족정론지 <민족통신>을 창간, 자주·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편집 방향으로 운영하시고 정론직필의 언론 본연의 사명을 다하여 오신 것으로 평
가 받으셨습니다.

특히 온겨레의 한결같은 지향이며 염원인 자주통일로의 언론 역할을 하시면서 ‘판문점선언’에 명시된 ‘민족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주의 문제 해
결’에도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2000년 9월 2일 북녘 조국으로 송환되신 63명의 비전향장기수 근황을 취재해 전해주셨고, 속아서 억지로 끌려온 김련희 평양시민과 강제로 끌
려와 하루아침에 부모 자식이 생이별을 당하고 있는 12명 해외식당종업원 가족들을 취재하여 전해주는 인도주의 실천사업을 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인도주의 문제는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에서 특별사업으로 채택해 ‘비전향장기수 2차송환’사업, 김련희 평양시민을 가족
품으로 보내는 사업, 12명 종업원들의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원상회복(송환)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기에 더욱 노길남 대표님께 늘 감사해 오
고 있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2000년 무렵 직접 만나 대표님의 조국사랑 정신을 알게 되었고 그 뒤 고국 방문 때나 평양에서의 민족공동행사 때 뵙게 되었습니다. 특히 부끄럽게도 모자란 저에게 <민족통신> 창간 20주년을 맞아 ‘2019년 특별상’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찾아뵙고 감사의 인사라도 하려 했었지만 뜻밖에 이렇게 안타깝고 슬픈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노길남 대표님! 아직도 대표님께서 바라시던 자주통일 세상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대양을 수십 번씩이나 건너며 애써오신 통일
애국사업은 남은 이들에게 맡기시고 이제는 편안히 잠드시기 빌겠습니다. 존경하는 대표님을 보내드려야 할 유족들과 <민족통신> 여러분께 심
심한 위로 말씀드립니다.

2020년 4월 28일 서울에서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드림

Preston Wood 작성일 20-04-29 11:26

So sad to hear of the passing of dear friend and comrade Ken Roh. Our struggle for reunification spanned decades and will continue until justice is won. Preston.”

박기식 작성일 20-04-29 14:20

우리 민족통일운동에  큰인물이었던  노길남 박사가
뜯밖에 운명을 달리하시여 가보지도 못하고 멀리서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보쓰턴에서: 
박기식

현준기 작성일 20-04-29 16:51

노길남 박사가 가시다니 이게왼말입니까.
기가막혀 할말이 없습니다.  노박사의 그간의 공적행동은
오직통일위한것이엇는데 우리 통일운동에 큰기둥이었는데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이제 좀 편히쉬시기 바랍니다. 명복을 빕니다.
현준기

김 수복 작성일 20-04-30 07:32

밖에는 어제부터 계속 내리네. 코로나 때문에 어차피 못나가니 비가 무슨 상관이랴만 당신 떠난 것도 서러운데 비까지 마음을 후벼 놓는 아침이네. 이제 보니 마지막 몇달간이 가슴에 걸려서 몇일간 마음을 못잡겠더라고. 당신 전화도 안받았고 문자도 대답 않했으니까. 먼저 갔다는 소식 듣고 믿을 수가 없었지. 아지트 처럼 항상 만나던 유목사님 부엌탁자도 그대로 있고 당신이 항상 운동하시라고 챙겨주던 유 목사님은 건강하신데 당신이 먼저 가다니 마지막까지 이단아 규칙 위반이다 . 탁자 사이에 두고 아직 싸울 것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먼저 가다니, 친구여, 시대의 이단아여, 우리 선배들이 100년 이상 걷고 있는 그 길 따라 가는 당신 말리지 않겠네. 어서 가서 자리 잡으라고 나도 곧 갈테니. 그 뒤를 따라 계속 그 길 걸을 동지들이 많이 있지않는가. 그래 이제 걱정 말고 어서 가라고 가서 좀 편히 쉬라고. .
먼저 간 동지 노길남을 보내며,
동부에서 삼가 김수복

김현환/김영순 작성일 20-04-30 09:05

조국의 민주, 자주, 통일을 위하여
헌신해오신 노길남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김현환 / 김영순

자주시보 작성일 20-05-01 04:57

노길남 선생님 영전에

노길남 선생님. 선생님께서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셨다는 비보를 접하고 저희는 황망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토록 정정하시고 민족자주를 향한 열정이 뜨겁던 선생님께서 어떻게 운명을 달리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실로 선생님을 잃은 것은 우리 민족민주운동에 커다란 손실이며 비통한 아픔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민족을 가슴에 품고 한생을 살아오신 민족의 일꾼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민족자주와 조국통일,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 오신 노정에는 수많은 고초가 있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으셨고 참으로 고귀한 업적을 수많이 남기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자주시보가 참된 민족의 정론지로 발전하라고 어디에 비길 데 없는 소중한 도움을 주셨습니다. 친근한 동지애로 따뜻이 감싸주시고 남모르는 헌신으로 기반을 마련해주시며 과분한 칭찬으로 한없이 고무하며 손잡아 이끌어주시던 선생님의 자주시보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믿음으로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인자하신 그 모습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민족에 대한 충직함과 왕성함, 진실성, 성실성, 소박성은 우리 민족민주운동에 귀감으로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충실성과 실력, 헌신으로 쌓으신 공적과 함께 민족의 추억 속에 영생하실 것이고 자주, 민주, 통일 운동의 자랑찬 승리와 더불어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우리는 선생님께서 민족민주운동에 쌓으신 고귀한 업적을 기리고 선생님의 참된 일꾼 됨을 따라 배우기 위해 선생님을 자주시보의 <명예대기자>로 삼가 모시려고 합니다.

노길남 선생님.

비록 심장의 고동은 멈췄지만 영원히 우리 곁에서 자주, 민주, 통일의 참된 길을 인도해 주십시오. 저희들은 앞으로도 선생님을 가슴 속에 모시고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으며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민족의 참된 승리와 번영의 길을 중단없이 걸어가겠습니다.

노길남 선생이시여. 민족의 품에서 부디 영면하시옵소서.

2020년 4월 28일
자주시보 운영위원회

Dr Dermot Hudon 작성일 20-05-01 14:37

Dear Friends,
 On behalf of the UK Korean Friendship Association and the British Group for the Study of the Juche Idea  I wish to express condolences on the passing away of Dr Ro Kil Nam  the editor of Minjok Tongshin.Please also pass on my condolences to his bereaved family.

Dr Ro Kil Nam was an outstanding activist for Korean reunification , a campaigner for peace and a great fighter for truth and justice.

I had the privilege of meeting him on at least 3 occasions and was interviewed by him twice . I was impressed by his sincerity and his devotion to the cause of independence and reunification.

yours sincerely

Dr Dermot Hudon
Chairman British Group for the Study of the Juche Idea
Chairman UK Korean Friendship Association

이유진 작성일 20-05-01 14:38

노길남 선생님을 추모합니다.

3년 전 4월, 사드반대 집회에서 처음 만난 선생님, 민족 통일을 염원하셨는데 먼 길 떠나시니 마음이 아픕니다. 남은 우리가 열심히 평화 통일 운동하는거 지켜보시고 편히 쉬세요.

소병선 작성일 20-05-01 14:40

조국 통일을 기대하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남북 통일을 염원하며 그늘진 곳에서 묵묵히 전진하는 분들이 있음을 알았을 때 새삼 놀랍고 죄스러웠습니다. 선구자가 되신 고인을 추모하며 가셨던 그 길을 밟아 가겠습니다. 선생님이 그토록 고대 하셨던 통일된 조국 북녁 땅에 서는 날까지요.

Doo Kang 작성일 20-05-01 14:41

명복을 빕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 감사합니다.

이내윤 작성일 20-05-01 14:43

노길남박사님의 영전에서

반평생을 한국의 만주화와 남북 평화통일및 남북화해 협력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치신 노길남박사님의 영전에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동안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님이 그동안 보여주고 쌓아왔던 정신과 행동은 많은 사람들애게 귀감이 되고 교훈이 될것 입니다. 비록 님은 가셨지만 님이 남기고 가신 그 업적과 성과는 사라지지 않고 지금 이시간에도 남아있는 당신의 추종자와 후배님들이 그뒤를 계속 이어 갈것입니다..이제 모든것은 산자에게 맡기시고 부디 왕생극락
 하시고 천국에 입성 하셔서 편안히 지내시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다시한번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한호석 작성일 20-05-01 14:49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그리움 속으로

1985년 5월 제가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거처를 옮겨 3년 동안 살면서 청년운동에 참가하고 있었던 때, 선생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 때 로 선생님은 코리언스트릿저널에서 편집장으로 일하고 계셨지요. 35년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영원히 흐르는 억겁의 시간 속에 35년은 너무도 짧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로 선생님이 떠나시고 뒤에 남은 제 가슴 속에서는 그 찰나가 영원한 세월처럼 느껴집니다. 때로는 원망도 했던 우리의 만남이었지만, 로 선생님이 떠난 지금 돌이켜보면 모두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1987년 봄 제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단식농성으로 지쳐있을 때, 단식농성장에 찾아오셨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1999년 가을 어느날 뉴욕에서 사는 저에게 오랫만에 전화로 온라인 언론매체 민족통신을 창간하게 되었다고 전하시던 그 목소리를 잊을 수 없습니다.

2004년 겨울 어느 날 우리집에 오셔서 하룻밤을 지내시고 아침에 흰 눈이 쌓인 밖으로 나가셔서 참 오랜만에 보는 눈이라고 어린애처럼 좋아하시던 그 얼굴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2006년 여름 어느 날 평양에서 열린 민족통일대회를 마치고 고려민항을 타고 심양으로 떠날 때, 제 옆 자리에서 서울에 가면 통일운동을 하는 후배들에게 주겠다고 하시며 조선의 명주 두 병을 기내 면세품 판매에서 사서 가방에 넣으시던 그 손길을 잊을 수 없습니다.

2019년 2월 어느 날 뉴욕 플러싱에 있는 식당에서 저에게 창간 20주년을 맞는 민족통신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중인는데 제게 강연을 맡아달라고 부탁하시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2019년 11월 13일 민족통신 창간 20주년 기념행사를 마치고 저를 숙소에서 공항까지 차편으로 데려다주시면서 그 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차안에서 두런두런 나누시던 그 모습이 생전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2020년 3월 25일 저는 "괴질재앙으로 모두가 어려움을 당하는 시기인데 건강하신지요. 부디 안녕하시기를 빕니다"라고 쓴 짤막한 텔레그램 메시지를 로 선생님께 보내드렸으나, 답신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 이제 떠난다는 말 한 마디 남기지 못하신 채,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그리움 속으로 떠나셨군요. 가슴 아픈 헤어짐이지만, 지난 35년 세월 우리의 만남은 아름다웠어요. 시름이나 걱정일랑 여기 내려놓고 떠나세요. 통일의 꿈 여기에 남기고 가세요. 통일의 꿈 가슴에 안고 가세요. 꿈처럼 아름다운 그리움 속으로 이제 떠나세요.

2020년 4월 29일
뉴욕에서 한호석 올림

우리문화 나눔회/윤 성운 작성일 20-05-01 14:52

삼가 명복을 빕니다
남과 북이 갈라진 현실을 통일의 꿈으로,남한의 민주화를 위해 시위 현장에서,그렇게 꿋꿋이 살아 오셨습니다. 바꾸시고자 한 세상은 아직 갈길이 먼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셨습니다 하늘 세상에서나마 평안히 쉬십시오
윤 성운 올림.

김그레이스 작성일 20-05-01 14:53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휘파람을 불며 열심히 통일 운동 하셨는데 이제 편히 쉬십시오. 통일 돠는날까지 후배들이 노력 할것 입니다 가장을 잃은 가족분들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Ko Mayoung 작성일 20-05-01 14:54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선생님의 민주화운동의 길. 남북통일을 염원했던 길.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저희들이 그 뒤를 이어 꼭 남북통일의 길에 앞장서겠습니다. 좋은 곳에서 편안히 쉬시며 저희들의 앞길을 지켜봐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한민족 유럽연대 / 최영숙 작성일 20-05-01 15:02

고 노길남 박사님 영전에 드리는  애도의 글

해외통일운동의 큰별, 민족의 거목  노길남 박사님!

조국의 평화 통일을 위해 조국산천과 온 대륙을 누비시던  만년 청년운동가 를 이렇게 몹쓸 역병이(코로나 19) 데리고 가다니요.

518 광주 참사를, 그리고 항쟁을 지켜보면서 민족의 모든 비극은 나라가 갈라진 분단으로 시작되었다 통탄 하셨지요 . 조국은 하나, 민족도 하나 해방 통일 만이 우리 8천만 계레가 살길이라는 이신념 하나로 평생을 살아 오셨지요.

1999년에는 민족통신을 창간하여 편향된 민족관과  분단지향적 언론 매체를 바로 잡고자 하셨고 북부조국의 진실을 독자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노 박사님은 조국통일 범민족 미주연합과 6.15 미주 위원회등에서 활동가로서 ,언론인으로서 혼신을  다 하셨습니다.

2년전 독일에 오셔서 한달여간 독일 운동의 현황을 취재하시느라 불철주야 독일의 곳곳을 다니시던 청년 같던 박사님의 열정적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특히  독일에서 돌아가신 재독 통일운동가들의 묘지를 찾아가 한분 한분께 큰절로 인사드렸다는 소식에  저희들의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박사님께서는 미주에 계시는 선배 통일운동가들을 지극 정성으로 챙기셨지요. 새벽부터 하루 8시간 이상을  택시운전을 하면서  민족통신을 동료들과 함께 운영하셨고  기사쓰고 활동하시는 중간 중간 건강이 좋지 않는 선배운동가들을 방문하여 그들의 벗이 되어 드리는 한편,분열된  미주운동을 안타가워 하면서  다시 화합을 위해 혼신을 다하셨습니다.

작년 민족통신 20주년에 저희 한민족유럽연대에게  제2회 평화사회정의상을 수상 해주셨으며, 저희들을 초청하여 독일 운동을  미국에 알리는 역활도 해 주셨습니다.

그때  노길남 박사님은 미국 전 지역에서 뿐만아니라 국내에서도 선후배 운동가들을 초청하여 고무 격려해 주시면서 따뜻한 인간미를 보여 주셨고, 통일운동가로서 모든 자질을 갖추신데 대해 저희는 깊히 감동했었습니다.

그 때 겼었던 한가지 에피소드가 생각나네요.행사장 앞에  태극기를 든 태극기 부대들이 행사 방해 할려고 행사장 앞에 몰려 왔었습니다 .
우리도 1미터 간격을 두고 조국통일, 평화통일 현수막을 들고 맞섰고요.그들이 외친 구호는 "노길남 을 북으로 보내라". "빨갱이 노길남 타도' 였습니다.양쪽이 대치한 그 중간을 노길남 박사님은 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보내주면 가지" 라면서 웃으면서 시위하셨습니다.통일운동가로서의  가져야 할 덕목인 의연함과 유연함이 행동으로 나타나 보였습니다.

이러한  예리함과 따뜻함을 간직한 소중한 동지를 우리는 잃었습니다.
아 노길남 박사님! 불러 보면 자상한 웃음으로 금방 답해 줄것같은 친구같은 동지 !
 자주적 민족평화 통일을 보지못하고 떠나심에 너무 아쉽습니다. 하지만 후배 ,동료 동지들에게 통일운동을 맡기시고 편안이 영면 하십시요. 그리하여  통일된 조국에서 부활하시옵소서.

조국통일을 위하여 평생을 살아 오신 당신의 고귀한 삶은 후세들에게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당신의 통일염원과 업적은 남은 운동가들을 통해 영원히 살아 이어져갈 것입니다.

 한민족 유럽연대를 대표하여 최영숙 의장  드림

임슬민 작성일 20-05-01 15:04

노길남공의 영전에

공과 나는 80년대 90년대를 같이 하면서 조국의 민주화,평화통일 운동을 같이 했다. 공을 먼저 보내면서 그동안 공과 함께했던 모든"애증"을 돌아 보면서 불면의 시간도 ㅡㅡㅡ 인간사 모두 부질 없음을ㅡㅡㅡ 공의 영면에 모든 이들과 함께 애도의 념을 ㅡㅡㅡ 부인 노경숙님 과 두 따님께 심심한 위로의 정을 올립니다.

송미령 작성일 20-05-01 15:05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역사는 그 자리에서, 그 시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피,땀,눈물이 있기에 옳은 방향으로. 비록 느리지만 끝내 변화해가리라 믿습니다. 이제 그 곳에서, 그 동안 만나고 싶었던 동지들을 만나 편히 쉬십시오..

정기성 작성일 20-05-01 15:08

로선생님께

로선생님, 노선생님은 로선생님으로 불리시길 원했던 분이셨습니다. 조국의 통일을 위해선 북녘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전함으로 왜곡되어진 한 쪽의 조국을 바로 알려야 한다며 수천리 길을 마다 않고 북녘조국을 수도 없이 찾으셨지요. 그런 선생님의 입장에선 분단 이후 우리 민족에게 남겨진 수많은 다름의 차이를 극복해 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아마 그렇게 불리시기를 바라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뉴욕 쪽에 오실 때면 늘 뉴저지 유태영 목사님 댁에 머무셨지요. 오실 때 마다 늘 가서 뵙던 기억이 정말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시다니 정말 황망할 따름입니다. 이제는 통일을 우리 입에 희망으로 올릴 수도 있게 된 그런 때 미국시민권자 북여행금지로 인하여 지난 2년여 그토록 가보고 싶으시던 북녘땅을 다시 한번도 밟아 보지 못하고 이리도 허망히 가시다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로선생님, 로선생님을 이야기할 때 가끔 우리가 쓰던 말들이 있었습니다. 청년 같은 열정이라구요. 로선생님은 조국의 통일운동에 복무한다는 일념 하나로 이 드넓은 미국의 동과 서를 비롯 캐나다, 유럽, 일본 그리고 조국의 남과 북을 정말 청년 같은 열정과 뜨거운 심장을 지니고 오가셨습니다. 피곤하실텐데 괜찮으시냐 물을 때면 오히려 함박웃음을 선사해 주시던 그런 낙관적인 통일운동가이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한 길, 조국의 통일을 위해 주어진 과업이라면 그 누구든 그 어디든 그 무슨 주제든 밤낮 없이 다니시며 우리를 귀찮게 해 주신 선배이셨습니다. 그런 뜨거움과 열정의 덩어리이셨기에 본의 아니게 발을 헛디디실 때도 있으셨으련만 그런 안타까운 기억들에도 로선생님은 늘 우리에게 열정의 기관차라 할까요 아무튼 조국통일이란 단어를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알려 주시는 것만 같은 귀중한 선배이셨습니다.

올 총선으로 이제 새로이 조국 반도에 통일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갖게 된 이 때 국회와 정부가 자주적으로 남북교류를 추진하고 또 미국을 추동해 낸다면 아마 올 가을 쯤이면 우리 함께 평양에서 소주 한잔도 할 수 있지 않겠냐 그런 기대를 하시던 선생님… 선생님과의 기억을 오래 오래 간직하며 선생님이 바라시던 우리 조국의 통일이 하나 하나 이루어져 나가는 매 순간 마다 우리의 청년 로길남 선생님을 늘 기억하겠습니다.

뉴저지에서 후배 정기성 드림

재독평화여성회일동 작성일 20-05-02 12:41

이세상을등지시고 천국으로가신 노길남을애통하며...
민족통신 발행자이시자 한평생을 한반도의 민주화와통일을 위하여 힘쓰주시고 끝못내시고  희생하신 노길남선생님이 억울이 코로나로 4월25일 2020년 1944년생 LA에서 외롭게 이세상을 떠나신 고인의명복을 삼가빌면서 평화의 나라에서 편히 쉬세요.고인의 가족들에게도 위로를 보냅니다.
재독평화여성회일동

Menschen sind ein Geschenk an uns
das wir für einige Zeit behalten dürfen.
Wir lachen gemeinsam und lieben sie...
Doch sie gehören uns genau so wenig
wie die Sterne.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우리에 대한) 선물이다
우리들이 얼마간 가질수있도록 허락한다.
우리들은그들과 함께 웃고 사랑한다.
그러나 그들은 별처럼 우리에게 속하지않는다.

Du bist manchmal in unseren Träumen
oft in unseren Gedanken und Erinnerungen,
immer in unserer Mitte
und ewig in unserem Herzen.
당신은 때때로 우리의 꿈에 나타나며
자주 우리들의 생각과 기억에 머문다,
항상 우리의 생활중심에..
그리고 영원히 우리의 마음속이 있다

Albert Schweitzer
Das einzig Wichtige im Leben
sind die Spuren von Liebe,
die wir hinterlassen,
wenn wir weggehen............
인생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사랑의 흔적을,  우리는 뒤에 남긴다
우리가 떠날때는……………

하용진 작성일 20-05-02 12:47

고 노길남 선생님의 영전에 올립니다.

노길남 선생님이 우리곁에 없다는 것이 아직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두 어달전 전화가 와서 요즘 우버해서 돈 많이 버니까 맛난 것 사주겠다며 조만간 한번 만나자고 하시더니...
아! 그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이야....

항상 청년같은 기백에 호탕한 웃음 소리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온갖 난관을 뚫고 미주통일운동이 묵묵히 전진을 해올 수 있었던데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었던 노길남 선생님 그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범민련 활동. 6.15미주위 결성, 청협, 나성포럼활동, 평양, 서울방문 등등 선생님과 함께 했던 수많은 지난날들이 주마등 같이 지나갑니다. 특히 저희 청년들과 격이 없이 지내며 항상 격려해주시고 성원해주셨던 노길남 선생님을 자주통일의 새 역사가 펼쳐지는 이때 떠나 보내야 하다니 그 애석함이 더욱 커기만 합니다.

노길남 선생님 너무 고맙고 고마웠습니다,
이제 자주통일꽃 만발한 곳에서 부디 영면하십니오.

Han Kyun Park 작성일 20-05-02 18:52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장민호 작성일 20-05-02 18:57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황종규 작성일 20-05-02 19:28

노길남 동지!!
노동지가 나를 땅에 묻어야지 내가 노동지의 영전에 이런 글을 쓰다니요!!
내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 마디는 어떻게 하라고 먼저 떠났소??

유태영 작성일 20-05-02 22:06

고 노길남 박사 영전에 드리는 기도

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명상하면서 노길남 박사의 생
과 사에 대하여 다시 한번 되새겨 보면서 기도를 드립니다.

노길남 당신의 생애는 그렇게도 철저한 나눔의 삶이였습니다.

노갈남 박사는 아낌 없이 모든 것을 내주고도 한 점의 후회없
는 너그럽고 순수한 마음으로 믿음-소망-사랑을 실천 하였
습니다.

주고 또 주고도 더 주지 못해 마음이 불안하고 안달하는 풍요
로운 행함으로 자신의 뜻을 가슴속에 뿌리를 내려 우리 모두
에게 정의로운 메아리를 치게 했습니다.

노길남 민족통신대표여, 당신은 남들이 가지 않으려는 가파른 생명
길을, 믿음과 행함으로 고독과 진리의 길을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끝까지 걸어가 승리자가 됐습니다.


노길남 박사는 오직 하나님의 정의와 민족을 위한 에국심
으로 고난과 실천의 십자가를 등에 지고 민족의 어두움의 길
을 밝히면서  말로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행동하면서 살았습
니다.

우리의 평화와 소망 되시는 하나님
우리가 서로서로 사랑하는 애국애족의 동지들의 마음으로 노길남 박사를 추모합니다.

평화와 소망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
 노경숙 여사님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힘으로
감추어 둔 그녀의  사랑의 기도로
부활의 주님의 옷자락 붙드는
평화와 은총의 삶을 위하여
진심으로 간절히 기도 드립나다. 아멘.

진천규 작성일 20-05-03 02:10

'통일운동가' 노길남, '영원한청춘' 노길남 박사님,
언제 뵈어도 따듯한 눈길로 맞아주시던 선배님, 언제라도 웃는 모습으로 맞아주실 것 같은 선배님,
이제는 조국통일에 대한 열정에 넘치는 선배님을 더이상 만날 수 없다는 현실이 도저히 믿기질 않습니다.
너무나 참담한 현실에 할 말을 잊습니다.
한 생 조국통일의 한 길을 걸어오시면서 이루지 못한 무거운 짐은 이 땅에 내려놓으시고,
부디 천국에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아직 이루지 못한 조국통일의 과업은 이 땅에 남아있는 저희들이 이루어 내겠습니다.
통일된 조국에서 환한 모습으로 얼싸안고 만날 날을 고대합니다.
<통일TV> 진천규 드림

LA 미주연합 작성일 20-05-03 11:09

오랜 고난의 시간, 전세계 특히 미주지역에서 박사님께서 노력하신 한반도 평화통일의 역사가 이룩될 것을 다 함께 기원합니다.
LA 민주연합 상임고문 : 차종환
상임대표: 김문철
사무총장: 이내운

한미 인권문제 연구소 작성일 20-05-03 11:12

노박사님 어찌 이리 갑작스럽게 우리곁을 떠나셧습니까. 최근 연락을 못드렷든것이 너무 마음 아프고 후회스럽 씁니다. 늘 저희곁에 오래 오래 함께 하실줄로 자만 햇던것도 후회되고요. 전쟁과 분단없는 하늘나라에 먼저 가셔서 이곳에 남은 저희들 남북동족 간에 싸움없는 세상 만들수 있도록 내려봐 주시구요....
한시헌 (한미 인권문제 연구소 )

이정수 작성일 20-05-03 13:52

생전에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하신 업적을 회고하며 삼가 고 노길남 박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조명훈 작성일 20-05-03 14:49

통일 운동가 노길남 선생님의 명복을 정중하게 빕니다.
꿈에서도 뵙는데 조국의 통일과 민족통신이 노길남 선생님의 유지대로 역할을 하기를 바라기를 신신당부 하더군요.
평화적 조국통일의 임무는 우리에게 맡기시고, 이제는 편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이흥노 작성일 20-05-03 17:28

로 박사님 영전에;
나 보다 먼저 천국을 가셨네요. 저도 뒤따라 가겠습니다만, 순서가 바뀌었네요. 박사님은 남다른 재치와 기교가 있어서 사람을 묶어세우는 데 따라갈 자가 없지요. 보나마나 천국에 가셔서도 민족 통일사업에 앞장 설 것이 확실합니다. 그곳에는 많은 민주 통일 애국자들이 주위에 있어서 그들을 통일전선에 묶어세우겠지요. 이제 땅위에서의 통일과업은 남을 우리가 짋어지겠사오니 부디 천국에서 편히 쉬면서 그곳 동지들과 재미나는 시간을 갖기를 기원합니다. 환하게 웃는 로 박사님의 얼굴을 그려봅니다. 눈물이 납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셔요.

황규식 작성일 20-05-04 00:27

노 박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렇게도 어려운 시기에 통일운동의 선두에 서시며 말과 행동으로 솔선수범 미주 뿐아니라
온세계를 날아 다니셨던 그 모습 이제는 다시 못보게 된 것입니까. 

우리의 절실한 과제였던 모든 차이를 뛰어 너머 하나의 대의를 실현하는 일에
군소리 말고 참여해야 한다는 그뜻은 어떻게하고 혼자 떠나 가신건가요.

적어도 미주에서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을 고집한 분은 없을 것입니다. 
노박사님을 만난 분이라면...!!! 

그런데 그리도 불의에 가시다니! 

그러나 노박사님 굽어 보십시요.

우리에게 각인된 그 교훈은 그것이 실현되는 날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해맑게 웃으시는 그 모습을 보며 전진할것입니다

부디 편히 계십시요   
황규식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상임고문)

한시헌 (한미 인권문제 연구… 작성일 20-05-05 13:03

노박사님 어찌 이리 갑작스럽게 우리곁을 떠나셧습니까. 최근 연락을 못드렷든것이 너무 마음 아프고 후회스럽 씁니다. 늘 저희곁에 오래 오래 함께 하실줄로 자만 햇던것도 후회되고요. 전쟁과 분단없는 하늘나라에 먼저 가셔서 이곳에 남은 저희들 남북동족 간에 싸움없는 세상 만들수 있도록 내려봐 주시구요....

윤운섭(독일) 작성일 20-05-05 13:05

존경하는 노길남 선생님!
조국통일을 위하여 고귀한 삶을 살아오신 해외통일운동가
 베를린,평양,보쿰에서 함께한 시간을 고히 간직 하겠습니다.

당신의 조국사랑은  역사에 영원히 기록됄것입니다.
통일 조국에 부활 하소서.
조국은 하나다.

독일에서
윤운섭

사회주의 통합당의 성명서 작성일 20-05-05 13:21

Dr. Roh Kil Nam, advocate for peace and the reunification of Korea
May 2, 2020 Struggle - La Lucha

Dr. Roh Kil Nam
Statement from the Socialist Unity Party / Partido de Socialismo Unido

On April 25, the world lost a great person dedicated to the Korean people, international solidarity, with an unflinching determination to expose the truth — all motivated by his love for humanity. Dr. Roh Kil Nam, also known as Ken Roh, was the founder of “Minjok Tongshin,” an online news publication started in 1999 in the U.S. dedicated to reporting honest news about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and countering misinformation from the U.S. media about North Korea.

Dr. Roh was born in 1944 in Gangneung, Gangwon-do, Korea, while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Roh began his political struggle for the democratization of South Korea during the dictatorship of U.S.-sponsored President Park Chung-hee.

Being born into the brutal Japanese colonial rule and enduring dictatorship in South Korea helped forge the steel of an activist and journalist. Dr. Roh lived his life determined to provide the movement for democracy in South Korea and the struggle for unification with the North with the necessary tools to counter imperialism’s powerful weapon of lies helping to continue the U.S. imperialist-maintained division between the North and South. He knew that the building of solidarity would require exposing those lies and professionally manufactured misinformation in the belly of the beast — the U.S.

Dr. Roh was instrumental in promoting organizations dedicated to that purpose and his work was recognized enough to have a meeting with a famous guerilla fighter against Japanese occupation who was also the DPRK’s first president, Kim Il Sung. Later in life, Dr. Roh would also be awarded the prestigious Kim Il Sung award by the DPRK government in 2014 for exemplary service towards building the ideals of the North Korean people.

Upon arriving in the U.S. in 1973, Dr. Roh quickly recognized that the claims of freedom and democracy in the U.S. were a myth that was exposed by the civil rights movement and historical racism faced by Black and Chinese people. His ideal of building solidarity and unity extended internationally. In Los Angeles County, where Dr. Roh lived, he was always happy to participate and use his media to cover protests supporting the liberation struggles of all oppressed peoples. He was also dedicated to the building of unity between progressive organizations in the U.S.

Dr. Roh was a tireless advocate for peace and re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He traveled 75 times to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and each time brought back the truth of North Korea, her people and their efforts to defend their sovereignty.

Our heart goes out to his family, and to all those who worked with Dr. Roh to end the imperialist division of beautiful Korea. Long live Dr. Gil-Nam Roh! Korea is one!

For the Los Angeles Branch, Socialist Unity Party / Partido de Socialismo Unido:
Maggie Vascassenno
Rebecka Jackson
Scott Scheffer
Jefferson Azevedo
John Parker

https://www.struggle-la-lucha.org/2020/05/02/dr-roh-kil-nam-advocate-for-peace-and-the-reunification-of-korea/?fbclid=IwAR3_mL0_Zpn_8WmfvKk2eow68SY5o_1bWoVROAhpFRCSREovft-tl6N9dPQ

(번역)

사회주의 통합당의 성명서.

세계는 진실을 폭로하려는 불굴의 결의로, 한국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위대한 인물, 국제 연대를 잃었다

4월 25일, 세계는 진실을 폭로하겠다는 불굴의 결의로 한국 국민을 위해 헌신한 위대한 인물, 국제적 연대를 잃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성에 대한 그의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켄 노로도 알려진 노길남 박사는 1999년 미국에서 시작된 '민족통신'의 창간자로, 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정직한 소식 보도와 미국 언론의 조선 관련 오보에 대응하기 위한 온라인 뉴스 전문 매체이다.

일본 식민 통치 아래에서 노 박사님은  1944년에 강원도 강릉, 한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국이 후원하는 박정희의 독재 시절 남한의 민주화를 위한 정치투쟁을 시작했다.

잔인한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에서의 지속적인 독재는  운동가와 언론인으로서  그를  강철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노 박사는 남한의 민주화 운동과  미국의 제국주의가 유지한 남북간 분단을 지속하는  미국의  강력한 거짓말 에  대항하여  필요한 도구로서 살겠다는  결심을  안고 투쟁하며  살아왔다.

그는 연대의 구축의 필요는  그러한 거짓말들을 폭로하고 전문적으로 제작된 오보를 짐승의 뱃속에서  노출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로 미국이다.
노 박사는 이러한 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조직을 홍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의 업적은일본 점령에 대항한  유명한 게릴라 투사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초대 주석이었던  김일성과의 만남을 가질 만큼 충분히 인정받았다.

만년에, 노 박사는 2014년 조선 인민의 이상을 구축한  모범적인 봉사자로 조선  정부로부터 권위 있는 김일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73년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노 박사는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주장이 흑인과 중국인들이 직면한  시민운동과  역사적 인종차별에 의해 드러난 신화라는 것을 재빨리 인식했다

연대와 통합을 이루겠다는 그의 이상은 국제적으로 확장되었다. 노박사는 그가  살았던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서  억압받는 모든 민족의 해방 투쟁을 지지하는 시위에 참석하여    취재하는 것을 항상 기뻐했고, 그것을  자신의 언론인 민족통신에 실었다. 그는  또한 미국 내 진보단체 간 통합 구축에도 공을 들였다. 

노 박사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지칠 줄 모르는 옹호자 였다. 그는 75번 (실은 더 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여행했고 그때마다  조선의 진실과 주권을 지키기 위한 인민들의 노력을 알려왔다.

가족들과  아름다운 한반도의 제국주의 분열을 끝내기 위해 노 박사와 함께 일했던 모든 분들과 저희들의  가슴이  함께 합니다. 노길남 박사님,  영생하시라! 조국은 하나다!

로스앤젤레스 지부 , 사회주의통합당 / 사회주의의 파르티도 데 유니도.
매기 바스카센노
레베카 잭슨
스콧 셰퍼
제퍼슨 아제베도
존 파커

지철 작성일 20-05-05 21:25

갑작스럽게 가심이 너무도 애닯고 안타깝습니다.
통일된 조국을 못 보고 가심이 너무나 원통합니다.
선생님의 뜻을 이어 조국통일을 앞당기는데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남은 과업은 남은 자들에게 맡기시고 편안한 잠 이루시기를 빕니다.

김창옥 작성일 20-05-06 21:25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석광수 작성일 20-05-07 10:53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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